흰머리와 세월

거울 앞에 선 여인

내 머리카락은 한때 꽤 괜찮았다.
단골미장원 원장은 손으로 쓱 내 머리카락을 위로 올리며 백만불짜리라고 했다.
내가 봐도 햇빛에 반짝거리는 머릿결은 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마흔을 조금 넘기면서 골치 아픈 손님이 하나 찾아왔다.
바로 흰머리다..
처음 몇 가닥일 때는 보이는 족족 뽑았는데, 갈수록 잡초같이 자라나는 흰머리는 어느새 내 머리를 점령했다.
아직 40대 중반인데 벌써 이게 뭐야? 한숨을 쉬며 염색을 했다.
그런데 한 달만 지나면 가르마를 따라 마치 모를 심어놓은 듯 빼곡히 올라오는 흰머리는 정말이지 꼴보기 싫었다.
자주 염색을 해서 흰머리는 사라졌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좋았던 머릿결은 점점 푸석하고 힘이 없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퇴직을 하고 예순을 넘겼을 때 ‘이제는 그냥 흰머리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과감하게 염색을 포기했다.
흰머리가 자라면서 검은 머리와 섞여 너무 지저분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머리가 그게 뭐냐며 지청구를 해 댔다.
남동생도 오빠도 나이들어 보인다고 한마디씩 했다.
결국 다시 염색을 했다.

그러다 일흔이 넘었다.
염색에 지친 머릿결은 점점 더 나빠졌다.
이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흰머리로 살아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역시 주변에서 한마디씩 했다.
“왜 염색 안 해?”, “염색하면 훨씬 젊어 보일텐데.”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복지관 카페에서 한 어르신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몇 살이유?”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누가 봐도 그분은 여든 중반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당신하고 비슷해 보인다고?’
속으로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띠 동갑은 되겠구만, 어디 감히 같은 나이라고!’
84세였던 그분은 머리가 하얗다는 이유 하나로 나를 자기 또래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아주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그렇다고 다시 염색을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흰머리로 살았고 머릿결도 점차 좋아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이 생겼다.
막내아들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상견례를 하는데 사돈이 너무 젊었다.
나는 일흔 셋, 사돈은 예순.
갑자기 내 흰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염색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말 백발로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 결혼 안 할 것 같던 큰아들이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태국에서….
결국 또 염색을 할 수밖에…
몇 번이나 염색포기를 결심했는데, 참 어렵다.

흰머리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사연이 많을 줄 몰랐다.
지금은 염색한 부분과 흰머리가 반쯤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또 지저분해졌다.
고민을 들은 올케언니가 컬러 트리트먼트를 하나 주었다.
염색약은 아닌데 흰머리를 어느 정도커버해 주는 제품이라고 한다.

마흔에는 흰머리가 싫어서 염색했고,
예순에는 염색이 지겨워 흰머리로 살아보려 했고,
일흔에는 드디어 백발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여든넷 어르신의 한마디에 마음이 긁혔고,
아들들의 결혼식 때문에 또 염색했다.
그리고 지금은 흰머리를 갈색 트리트먼트로 슬쩍 멋을 내고 있다.
흰머리를 은은하게 가려주니 한결 단정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든 깔끔하게 보이고 싶고 스스로도 젊게 보이면 하루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굳이 머리카락 하나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싶지는 않다.
흰머리를 그대로 두고 싶으면 두고, 가리고 싶으면 가리면 된다.

파란만장한 염색의 세월에서 돌아와, 이제 거울 앞에 선 칠십중반의 여인,
찬 공기 속에 피어난 국화 한 송이, 이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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