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체험한 기적

한여름 밤의 기적

그때도 그랬다.
35년 전에도 사상 최고의 더위라고 했다.
기껏해야 34도였던 그 시절, 대부분의 집에는 벽걸이 에어컨이 거실에 한 대뿐이었다.
폭염경보가 울린 그날 우리는 모두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요와 이불을 펼쳐놓으니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대며 자리를 맡았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시원해지고 떠들던 애들도 어느덧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귀찮아서 돌아누웠다.
그런데도 점점 더 심해져 드디어 짜증이 폭발했다.
상대를 향해 손을 내치며 “아유 왜 그래? 그만 하라니까!” 소리를 질렀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다.
꿈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사방은 깜깜했다.
그런데 그 어둠 한가운데, 낯선 붉은 빛 하나가 춤을 추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빛을 직시한 순간, 충격으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에어컨을 연결한 콘센트 선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불이야! 불!”
정신없이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무작정 화장실로 달려가 수건에 물을 적셨다.
그런데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불은 안 끄고 어디 가는 거야?’
겁에 질린 아이들이 깨어나 울먹이던 그 짧은 찰나, 밖으로 나갔던 남편이 바람처럼 돌아와 내 손의 젖은 수건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코드를 뽑아 던지고 수건으로 불길을 내리치며 말했다.
“이사람아~ 전기로 불이 났는데 물수건 가지고 덤비면 어쩌자는 거야~~”
“아, 참 그렇지…”
복도식 아파트라 밖에 있던 두꺼비집을 내리려고 그렇게 급히 뛰어나갔던 거였다.
믿음직한 태도에 안도하면서도 머쓱한 마음에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말은 하고 나갔어야지. 혼자 도망간 줄 알았잖아.”
다행히 불은 더 이상 번지지 않고 꺼졌다.
벽과 천장이 그을음으로 새까매졌다.
새벽 3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오늘도 극한 폭염, 용인 38도, 경상남도 양산은 42도라고 한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켜놓고 저녁을 먹던 중, 갑자기 ‘툭’하며 전기가 나갔다.
과부하로 인한 단지 내 정전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어두워진 실내, 촛불 하나를 켜두고 아지랑이 같은 불꽃을 바라본다.
문득 35년 전, 그날 밤의 붉은 불길이 겹쳐 보인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드는 듯했던 그 손길.
귀찮다 돌아누웠는데도 점점 더 강하게 나를 깨우던 그 손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밤의 화재는 내게 단순히 위험에서 벗어난 한 사건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주님의 현존하심을 마주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마치 친한 친구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나에게만 살짝 털어놓는 듯한 친밀감이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고, 혼자라고 느낄 때에도 주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35년 전 그날, 나를 깨우셨던 주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키는 비밀 친구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시편 121,4)

언제나 나를 살피시고 붙들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불확실하고 과열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날마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다.

잠시 후 정전이 복구되고, 수면 모드의 에어컨 바람이 부드럽다.
그 평온한 바람에 마음을 실어,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품 안에서 깊은 잠을 청해본다.
“이 밤도 우리를 보호하시어 당신의 품 안에서 쉬게 하시고, 고요한 밤 시간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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