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quiet reflection on life and farewell.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Hodie mihi, cras tibi)

며칠 전, 큰동서의 부고가 카톡에 올라왔다.
큰동서는 5년 전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병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여러 번 위기가 있었다.
큰동서 나이 78세, 아직은 이른 나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긴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난다.
투병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루하루를 붙잡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
큰 동서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놓음의 순간이 아니었을지…

평생을 큰며느리로 살았던 큰동서는 겪어야 했던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큰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늘 ‘해야 할 일’이 먼저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국에서 오빠와 사시는 친정 엄마가 보고 싶어도 딱 한 번 미국 여행을 다녀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큰 동서는 이런저런 일을 말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큰 동서의 인생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온 삶이었다.

내가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큰 동서는 울산에 살았다.
덕분에 지리적으로 가까워져 다른 동서들보다 유독 더 친하게 지냈다.
다도 선생이었던 큰동서는 만날 때마다 차 한 잔에 담긴 품격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참다못한 내가
“형님, 이거 그냥 마시면 안 돼요?” 하면서 차를 후르륵 마셔버린 기억이 난다.
“아이구 배우면 좋지 뭘~”하면서 빙그레 웃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마치 오래 비워 둔 방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허전함이 마음에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부고 소식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이 쉬운 건 아니다.
다만 세상의 순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뿐이다.
누구나 이 길을 한 번은 건너간다.
다만 먼저 가는 사람과 조금 늦게 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옛 묘지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이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Hodie mihi, cras tibi).”
죽음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길 위에 서 있음을 깨우쳐 주는 말이다.

큰 동서는 긴 병 끝에 그 길을 먼저 갔다.
이제는 하느님 품에서 평화의 안식을 얻고 있을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이 오고, 밥을 먹고,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이별을 겪고 나면 그 평범한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별일 없는 하루가 사실은 꽤 괜찮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나이, 그래서 오늘이 가장 귀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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