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상의 시작
첫 콘도를 계약하고 짐 정리가 끝난 후 26층에서 내려다보는 방콕의 야경은 밖의 날씨와 다르게 시원했다.
바깥의 뜨겁고 습한 공기가 아닌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서 내려다 보는 야경은 참 좋다.
1년 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까?
처음에 1년만 거주해 볼까? 하고 시작한 방콕 생활이 왜 지금까지 이어졌는지 말 해보려 한다.
새로운 곳에서 맞이하는 첫 날은 항상 설레인다.
물론 이전에도 여러번 방문한 방콕이지만, 여행자의 마음과 장기 거주자의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장기 거주자로서 시간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 가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되서 못 갔던 곳들을 이번에 경험해 보자는 심적 여유가 있다.
첫 주에는 쇼핑몰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콘도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용히 커피 한잔하며 시간 보내기 좋은 카페도 물색하고
편하게 들려 간단히 식사하기 좋은 식당도 물색하며 다니다 보니 일주일 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한국에 비해 느긋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여유로운 일상, 모든 것이 좋게만 다가왔다.
말이 안 통해서 손짓 발짓하며 물건 고르고 주문하는 외국인에게 짜증보다 웃으며 대해주는 상인들,
펍에 앉아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혼자 마시는 맥주 한잔까지 여유로운 시간 이었다.
한두 달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단골 카페도 생기고 단골 식당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 이런 느긋하고 여유로운 일상이 좋아서 많은 외국인들이 태국으로 은퇴 이민을 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거주는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행과 거주는 다른 부분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 좋기만 했던 것들 중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생겨나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도 종종 발생한다.
날씨, 언어, 인프라, 문화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과 답답함은 해외 생활에서 오는 숙명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싶지만,
아직 까지도 이해가 안되고 불편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날씨는 일 년 내내 덥다.
그냥 덥기만 하면 다행인데, 매일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우기에는 습하기까지 하니 죽을 맛이다.
원래도 비오는 날을 싫어하는데, 심지어 태국의 우기는 일년 중 절반 이상인 7~8 개월이 우기이다.
차라리 비라도 오래 내리면 더위라도 좀 씻겨 내려가리라.
하지만 이놈의 비는 한두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쏟아붓다 그친다.
지열이 식기도 전에 비가 그치니 해가 다시 뜨면 땅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꿉꿉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이건 정말 아직 까지도 적응이 안된다.
언어야 당연히 외국에 나왔으니 잘 안 통하는 게 맞지만,
일본은 가지 전부터 일본어 공부를 했어서 어느 정도 말이 통했었고,
필리핀이야 영어가 일상적으로 통하는 나라이다 보니 크게 불편할 정도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여기, 이곳 태국은 태국어를 모르면 정말 한마디도 안 통할 때가 많다.
태국어는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겐 외계 언어다.
정말 까만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다.
글자는 둘째 치고 말도 5성조라 발음하기 힘들어 죽겠다.
성조 따라 뜻이 바뀌니 아직 발음이 부정확한 나는 가끔 태국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 부분은 끝을 보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한번 날 잡고 제대로 써 보겠다.
왜 이곳 방콕을 떠나기 싫었을까?
첫 글에서도 얘기 했지만, 해외 생활에 어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 있으리요.
여러모로 불편함과 답답함이 공존하는 게 해외 생활이지 않을까 싶지만,
가끔 ‘에라이~ 그냥 한국에 다시 갈까?’ 하는 마음도 들 때가 종종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막상 ‘정말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인 곳이 방콕이었다.
무엇을 하든 주위에서 눈치 주지 않는 이곳의 분위기?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상식에 벗어난 행동들은 하지 않습니다.)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의 분위기?
자유롭고 얽매일 것 없이 살 수 있는 일상?
무엇이 나를 이곳에 남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잠시 한국에 일이 있어서 들어가면 한국만의 익숙한 분위기와 편리한 일상이 좋고
방콕에 다시 돌아오면 날 맞이하는 꿉꿉한 공기를 느끼면서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좋다.
이렇게 보면 생활 속의 불편함과 답답함은 있지만 마음의 자유로움이 있는 방콕이 좋아서 떠나지 못하는 것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콕이 주는 여러 가지의 단점 속에 나를 붙잡는 여러 가지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답이 안 나오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방콕을 떠날 수 없는 가장 큰 결정적인 이유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처음 계획했던 1년 거주의 끝자락에서…….
한국에 돌아가기 한두 달 남았을 쯤, 몇 안되게 사귄 태국 친구 중 한 명의 생일 파티 자리였다.
그곳에서 지금 나를 방콕에 눌러 앉아버릴 마음을 먹게 한 그녀를 만난 것이다.
시간이 늦어서 그녀와의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려 한다.
과연 내가 태국에 남은 것이 오로지 그녀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