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소개로 간 사암침 한의원, 보통 한의원과 진료방법이 다르다.
일반 한의원은 침대에 누워 편하게 진료를 받는다.
각각 커텐이 쳐 있어 다른 사람을 볼 일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대략 20명이 소매와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린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그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잠시 후 한의사가 들어와 반갑게 인사한다.
“아이구,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요즘 잠은 좀 주무세요?”
“아니요, 아직도 못 자요.”
“상추하고 수육은 잘 챙겨 드시죠?”
“그럼요. 아주 잘 먹고 있어요.”
“계속 드셔야 돼요. 매운 건 절대 안 됩니다. 고추, 파, 마늘 다 안 좋아요.”
“그럼 양념은 뭘로 해요?”
“어머니는 심장에 열이 많아 스님처럼 드셔야 한다니까요.”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터진다.
침 맞으러 왔다가, 웃음치료까지 받는 셈이다.
사암침(舍岩鍼)은 조선 시대의 승려인 사암(舍岩)이 창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한국 고유의 침 치료이다.
중국 침술을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갖추고 현재도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치료법 중 하나이다.
사람들의 체질을 분류해서 치료한다는데 나는 ‘상추과’로 판정받았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통증을 안고 있다.
무릎이 시리고 어깨와 허리가 아픈 사람, 만성 피로를 달고 사는 사람, 매일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
소화가 안 되어 늘 속이 쓰린 사람 그리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나까지…
한의사는 사람들에게 침을 놓으며 친절하게 말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 같은 병이라도 치료 방법이 달라요.”
한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이구, 애초에 조물주가 전부 튼튼하게 만들어놨으면 얼마나 좋아?”
누군가 맞장구친다. “그러게요.” 한의사가 돌아보며 말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옛날 아일랜드에서 한 가지 감자품종만 심었거든요.
튼튼하지, 알도 굵지 그래서 다 그걸 심었대요.
그런데 그 감자가 병이 돌자, 다 썩어서 백만 명이나 굶어 죽었다잖아요.
만약 여러 품종을 심었더라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겠죠? 세상은 다양해야 종이 살아남는 거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감자이야기가 이렇게 심각할 줄이야…
모두 똑같이 건강한 체질이면 좋을 것 같지만,
한가지 병으로 인해 인류가 전멸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건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감자는 우리나라의 쌀과 같은 존재이다.
1845년, 감자 역병, 일명 ‘감자 마름병’이라는 병이 아일랜드를 덮쳤다.
잎과 줄기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땅 속의 감자는 다 썩어버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자를 주 식량으로 삼고 있었으니, 감자 역병은 단순한 흉작이 아닌 재앙이었다.
한의원을 나와 거리를 바라보니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마른 사람, 뚱뚱한 사람…
저마다 다른 몸과 다른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한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다양해야 종이 살아남습니다.”
자연은 저마다 다른 씨앗을 품고, 서로 다른 생김새와 속도로 생명을 이어 왔다.
완벽한 몸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이 모여 생명의 가능성을 넓혀 온 것이다.
잠을 못 자서 늘 피곤해도 내 체질에 맞는 리듬으로 오늘까지 견뎌 온 내 몸이 새삼 고맙고 대견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구에 단 하나뿐인 작은 감자다.
화려한 꽃은 피우지 못해도,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며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세상은 빠름을 칭찬하지만, 생명은 언제나 저마다의 속도로 익어 간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조금씩 단단하고 알차게 여물어 간다.